1. #스토너 초판본

    ✒ 존 윌리엄스
    📔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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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흔쾌히 감내하는 윌리엄 스토너의 자서전 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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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 중 "그는 삶을 관조하는 자였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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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술형 수학 문제의 경우 답이 틀려도 풀이 과정에서 부분 점수를 받는다. 인생이라는 문제를 푸는 세상의 좋은 소설들도 자신만의 오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분적 옳음을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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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단순히 수만 명, 수십 만 명의 청년들만 죽이는 게 아냐.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속에서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버린다네. 사람이 전쟁을 많이 겪고 나면 남는 건 짐승 같은 성질뿐이야
    그레이스는 맞은편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거의 차분하게 보이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디스의 작업대에 있는 램프 하나만이 켜져 있어서 지나치게 밝은 빛과 깊은 어둠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레이스가 컬럼비아를 떠난 것이 사실은 감옥을 벗어나려는 시도였음을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어쩌면 임신도 그런 시도일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상냥함과 부드럽고 선한 의지 때문에 그 감옥을 다시 찾고 있었다.
    나는 자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것이나 내게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조금도 신경을 써본 적이 없어. 전혀

    난 자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물론, 좋은 교수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 자네는 무식한 개자식일세
  2. #홀

    ✒ 편혜영
    📔 오기는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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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 오기, 자신이 판 구덩이에 스스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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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이 얼마 후에 그 남자를 찾아내. 무사히 살고 있어. 다른 도시에서, 이름을 바꾸고 직장을 구해서 살고 있어. 새로 생긴 가족과 함께.” “아내가 싫었나 보네.” “그보다는 뭔가를 알게 된 것 같아.” “뭘?” 아내가 대답 대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무했네. 그래서 행복했나?”
    갑자기 아내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눈물이 조금 맺히는 정도였는데 이내 소리 내어 울었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장모는 산 것을 보려고 잉어를 키우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잉어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려고 키운다는 게 아닐까.
  3. #구의 증명

    ✒ 최진영
    📔 천 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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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과 구의 이야기. 그러나 이모가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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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죽음이란 바로 할아버지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여덟 살을 기억하지 못했고 구 역시 그랬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향해 ‘너’라고 부른 그 순간만큼은 구도 나도 명징하게 기억했다.
    그날, 노곤한 한낮의 햇살과 온기처럼 허공에 깃든 라일락 바람도.
    더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건, 더지가 담의 그런 모습을 그려보았다는 뜻이었다
    느닷없이 통곡하는 나를 보고도 이모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주며 중얼거렸다.
    괜찮다, 아가야,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갈 거야.
    근데 그런 걸 지나간다고 말할 수 있나, 이모.
    지나가지 못하고 고이는데.
    고유하게 거기 고여 있는데.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온갖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대.
    근데 거기 희망은 왜 있었을까.
    희망은 왜 나쁜 것을 모아두는 그 항아리 안에 있었을까.
  4.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 제임스 팰런
    📔 "도대체 사이코패스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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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했던 이야기와는 너무 다른 스토리. 자신이 매력적, 특히 성적 매력이 넘치며 인기있고 잘생긴 백인 남성이고 거기에 타고난 사이코패스의 뇌를 지녔지만 환경적인 요인으로 사회화 된 인물, 이라는 것에 취해있다. 읽기 전에는 정확히 사회화를 이룰 수 있게 길러진 과정과 일화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좀 더 과학적인 요인에 치중한 책.

  5.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 삶이란 신(神)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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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강민주가 등장했다. 낮은 포복을 혐오하고 높이 기립해서 사는 여자, 물살을 거스르며 하류에서 강의 상류로 나아가는 여자. 그런 주인공이 필요했다. 현실에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소설이므로, 강민주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이 소설이 커브를 결심한 모든 이에게, 잠시라도 힘이 되었길 바란다.
    1992년 여름 양귀자,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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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콘은 가부장제를 공고히할 뿐이라고, 2022년에서야 내 시야에 들어온 담론을 1992년에 책으로 펼쳐냈다니.
    감탄과 절망이 동시에 온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통해 다시 한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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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주조차도 백승하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조차 현실적이라 마음이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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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배고픔이나 추위, 짜증을 참는 일에는 의외로 약하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런 것은 참을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자식의 몫까지 당신이 충분히 참았다는 논리로.
    나는 여자들이 그렇게나 많이 남자들에게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남자에게 환상을 품는 것에 정말이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내가 선택한 이 운명 말고, 다른 운명의 남자가 어딘가 꼭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여자들의 우매함은 정말 질색이다. 남자는 한 종(種)이다. 전혀 다른 남자란 종족은 이 지구상에 없다.
    나는 연약한 이 땅의 여자들에게 절망한다. 내가 벌이고 있는 남자들과의 전쟁에서 진정한 동성의 협력자를 얻는 일은 정녕 불가능한가. 어차피 신의 대리인 자격으로 홀로 치르는 전쟁, 끝까지 혼자 가겠다는 내 결심은 더욱 굳어진다.
    "…당신의 비범함을 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한 기분이라오. 세상은 비범한 자에게 관대하지 못해요."
  6. #그녀의 취미생활

    ✒ 서미애
    📔 이곳은 지루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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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재밌는 단편 소설이었다. 
    주인공 정인이 마을에 홀로 이사온 언니 장혜정을 만나고 새롭게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할머니의 역할도 아주 컸지만.

    "정 못참겠으면 아무도 없을 때 꼬집어버려."
    "지난 번엔 예금에 대해 알아봤으니까, 이번엔 보험에 대해 공부해볼까?" 나와 눈을 맞추는 언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7. #홍학의 자리

    ✒ 정해연
    📔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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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을 최대한 깨고 보려고 정은성이 여자인가? 생각했는데, 채다현이 남자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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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연 작가가 묘사하는 남자들은 정말 한국남자의 특징이 모조리 박혀있어서, 보고 있자니 진저리가 절로 쳐진다. 처음엔 불쌍한 다현의 죽음에 슬퍼했으면서 시간이 흐르니 다현의 죽음의 진실에 무감해지는 자신을 알고도 '일단 나는 살고 봐야하니까 어쩔 수 없지'하며 자위하는 태도라니. 정말 한남 그 자체. 말미에 경비원을 살릴 수도 있었지만 그냥 뒀던 것에 대해 뿌듯해하는 태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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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가장 잘 안다던 다현은 알까? 다현의 죽음에 자신이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것을.
    같이 네덜란드에 가서 살자던 다현의 말 때문에 암스테르담행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마침 떠올라 정한 것뿐이다. 하지만 다현이 그렇게나 가고 싶어 하던 아루바 섬에 가볼 의향은 있다
    다현을 선택했던 것은 그 아이가 외로웠기 때문이다. 의지할 부모나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젊고 탄력 있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스읍, 아쉽다는 듯 숨을 들이켰다. “요게, 요게, 만 16세까지거든요. 딱 한 살만 더 먹은 애였으면 좋았을 텐데.”
  8. #두 번째 거짓말

    ✒ 정해연
    📔 비명이 어둠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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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눈물을 자아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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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은 절대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버지가 했던 선의의 거짓말이 한 명의 인생 뿐만 아니라 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9. #유괴의 날

    ✒ 정해연
    📔 1989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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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보는 내내 영화로 만들어지면 딱이겠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복선과 스릴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에 연구 결과 복제본을 가지고 돈 벌 생각하는 박사까지.

  10.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

    ✒ 피터 스완슨
    📔 로건 공항에서 보스턴 시내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1.6킬로미터 길이의 섬너 터널을 통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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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스완슨의 책에 나오는 남자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어도 개의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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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적으로 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나온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 보다 전작이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확실히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이야기를 조금 더 발전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책도 마찬가지로 재밌었다. 다만 결말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케이트가 홀로 설 선채 끝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어찌됐건 이제 조지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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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 EVERY FEAR가 원제인가? 이게 원제라면 더 와닿는 제목인 것 같다. 제목의 화자가 아예 바뀌어버렸네.

  11. #소년이 온다

    ✒ 한강
    📔 비가 올 것 같아.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12. #모순

    ✒ 양귀자
    📔 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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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진, 안진모, 엄마, 엄마의 쌍둥이 여동생 이모, 심심한 이모부, 김장우, 나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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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진이 훌쩍 어디론가 떠나곤하는 김장우에게 끌리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같다. 안진진, 하고 성까지 붙여 부르는 것까지 꼭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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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름돋게도 이모부는 나영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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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모의 죽음에도 결국 선택한 것이 나영규인 것은 오히려 다행이구나 싶다. 김장우와 함께할 안진진의 삶은 이미 간접적으로 겪어본 것이니.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희미한 존재에게로 가는 사랑.
    이렇게 말하면 보다 정확해질지도 모르겠다. 강함보다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 연한 향기를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해 직진으로 강한 화살을 쏘지 못한다. 마음으로 사랑이 넘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한참 후에나 희미한 선 하나를 긋는 남자.
    김장우는 사진을 봉투 안에 정성스럽게 담아 내 쪽으로 밀어놓았다. 그리곤 괜히 민망해서 시선을 이리저리 황망하게 돌렸다. 김장우와 만나면 나는 이렇게 선명해진다. 그는 희미한 것들을 사랑하고 나는 가끔 그것들을 못 견뎌한다.
    "안진진. 인생은 한 장의 사진이 아냐. 잘못 찍었다 싶으면 인화하지 않고 버리면 되는 사진하고는 달라. 그럴 수는 없어."
    착하고 착한 우리 안진진, 이라고 말하는 남자 앞에서는 더욱 착해지고 싶은 것이다. 또, 그런 남자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김장우가 나한테 거는 주문은 이것이다. 착하고 착한 안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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